본문으로 바로가기

2023년 3+4호

이곳엔 요즘 패션이란 없다
동묘 시장

CU 핫플레이스
글.김지은 사진.김동현

성수, 강남, 청담과는 또 다른 결의 패션 성지 동묘시장.
옷 좀 입는다는 사람들이 자신의 패션센스를 발휘하며 저렴한 가격에 쇼핑한다.
여기에 더해 어르신들의 실버 패션으로 주목받고 있는 곳이 또 이곳 동묘다.
패션피플들이 동묘시장에 가는 이유다.

혼돈, 그 속에서 발견하는 멋

빈티지, 구제, 세컨핸즈. 중고 의류에 대한 호명은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누군가에게 버려진 혹은 잊힌 옷이라는 편견을 벗어나 세상에서 하나뿐인 나만의 스타일을 발굴하는 곳, 동묘. G드래곤과 손담비, 정려원 등 패셔니스타들의 놀이터로 방송 매체에서 언급되면서 빈티지 제품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에게도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곳이 됐다. 2018년에는 세계적인 디자이너 키코 코스타디노브(Kiko Kostadinov)가 동묘를 방문한 뒤 동묘의 ‘아재 패션’에 큰 영감을 받은 듯한 글을 인스타그램에 남기고 새 시즌의 디자인에 과감한 믹스 앤 매치 스타일을 적극 반영하며 또다시 주목받았다.

동묘 벼룩시장을 횡단보도 너머에서 바라보면 혼돈 그 자체로 보인다. 왼쪽과 오른쪽 구분 없이, 누구나 오고 가고 싶은 곳으로 간다. 오토바이나 차량도 심심치 않게 보이고 자전거도 지나다닌다(주말에는 보행 전용 거리를 운영한다!).

그러나 실제로 그 안으로 발을 들이면 무질서 속의 질서랄까. 나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흘러가게 된다. 그렇기에 동묘에서는 모험, 탐험, 발굴이라는 말들이 찰떡같이 어울린다. 그야말로 세상에 하나뿐인 나만의 패션 아이템을 발굴하기 위해 떠나는 모험의 공간이 바로 동묘다.

옷더미 동산을 탐험하고 골목 여행하기

동묘시장은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벼룩시장이다. 1905년에 개장해 아직까지 인기를 끌고 있다. 동묘공원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지만 골목골목 빈티지 제품을 판매하는 재미있는 가게들이 많아 골목 구경하는 것 또한 묘미 중의 하나다. 그렇기에 동묘 벼룩시장의 정확한 입구는 없는 셈이다.

동묘 벼룩시장에는 의류, 가방, 액세서리, 전자제품, 서적, 수입 식자재 등 각양각색의 물건들이 판매되고 있다. 이 중에서도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동묘공원 입구를 기준으로 정문 앞에서부터 오른쪽 길을 가득 채운 옷 산이다. 250m가량의 길 위에 상권이 형성되어 있다. 혹자는 옷 무덤이라 표현하기도 하는데, 옷걸이에 걸려 있는 것이 아니라 바닥에 아무렇게나 쌓아둔 옷더미의 모습에서 동산이 연상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마구잡이로 쌓여 있는 옷더미에서 특별한 물건을 찾아내는 즐거움이 동묘만의 매력이다. 그러나 동묘를 처음 방문했거나 섣불리 옷 산에 손을 뻗기가 어렵다면? 또는 빈티지 제품에 대한 진입 장벽을 가지고 있다면 동묘 벼룩시장의 골목 골목 안에 자리한 키치하면서도 유니크한 상점으로 발걸음을 돌리면 된다. 셔츠는 셔츠대로, 스웨터는 스웨터대로 정리가 잘 되어 있어서 과거의 스타일을 편안하게 감상하며 옷을 고를 수 있다. 사장의 안목과 취향이 나와 맞는 가게를 만난다면 그 또한 새로운 즐거움일 것이다.

동묘는 인간미 넘치는 벼룩시장뿐 아니라 과거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는 점에서 누군가에게는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누군가에게는 살아보지 않은 시절을 추억하게 하는 마법을 발휘한다. 서울이라는 대도시에서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풍경이기에, 꼭 패션 아이템을 위해서가 아니더라도 수많은 사람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평일임에도 각자 다른 목적을 가진 사람들로 활기가 넘치는 곳. 동묘는 정말 살아있다!

동묘의 아름다움은 바로 여기에 있다.
나이, 젠더, 패션 공식 등 모든 경계를
지워버리는 공간이라는 것이다.

나이, 젠더, 패션 공식의 경계를 부수다

동묘의 또 다른 매력은 동묘를 찾는 사람들의 연령층이 10대~80대까지 그야말로 전 세대가 찾는 곳이라는 점이다.

“너무 딱 맞는 것 같지? 재킷 색은 마음에 드는데 너무 딱 맞는 것 같아.”

옷더미 속에서 보물을 찾고 있다는 연대 의식 때문이었을까. 한 할아버지가 자신이 입은 재킷에 대한 소감을 물어왔다. 멋을 추구하는 데 나이가 따로 없다며 봄맞이 쇼핑에 나왔다는 할아버지. 무엇이 동묘를 찾게 하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옷을 사러 갈 때 제일 먼저 이곳을 찾는다고 한다.

동묘의 멋쟁이 어르신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는 김동현 작가는 동묘의 멋쟁이들을 일컬어 ‘숙성된 멋’이라 정의했다. 그 의견에 백배, 천배로 공감한다. 얼마 전 10·20대의 패션과 30·40대 패션의 차이점에 대한 글을 읽은 적 있다. 10·20대는 타이트한 미니스커트에 크롭 재킷 등으로 추위에 굴하지 않는 스타일링이 유행 중이고, 30·40대는 조거팬츠에 어그부츠, 패딩으로 스타일링을 한다는 글이었다. 그 글을 읽는 동안 왜 50대 이후의 패션에 대한 내용은 담고 있지 않은지 머릿속에서 작은 물음표가 떠다녔다. 패션은 젊은이들만의 전유물이라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은 아닌지, 아니면 나이가 들수록 옷이란 그저 입는 것일 뿐이라 생각을 했던 것일까. 패션에 대한 그동안 가지고 있던 생각들을 동묘에 다녀온 뒤 반성하게 되었다. 동묘의 아름다움은 바로 여기에 있다. 나이, 젠더, 패션 공식 등 모든 경계를 지워버리는 공간이라는 것이다.

“너무 재미있어요.
오리 문양 패턴이 가득한 면셔츠, 재미있는 장식이 붙어 있는 그런지룩.
공장에서 대량 생산된 제품에서는 찾을 수 없는 힙이 있죠.”

살아본 적 없는 과거를 추억하게 하는 곳 동묘

직선거리로는 얼마 안 되는 듯하지만 골목골목 샅샅이 돌아다니고, 진열된 코디가 마음에 드는 상점들을 다시 기웃거리다 보면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나가 있다.

갑자기 불어온 차가운 바람이 다시 겨울로 향해가는 것은 아닐지 의심스럽지만 열심히 아이쇼핑하고 다녀서인지 차가운 음료수가 절실해진다. 그때 동묘공원 쪽 좌판에 옛날 커피, 미숫가루를 파는 곳이 보인다. 포장마차로 다가가니 족발과 토스트도 팔고 있다. 이게 또 동묘만의 풍경이다. 단돈 천 원에 미숫가루 한잔을 받아 동묘공원 내부로 들어간다. 다리를 쉬며 미숫가루를 한 입 삼킬 때 개학을 준비하는 듯 보이는 굉장히 앳된 청년들 셋이 보인다. 그들은 오늘 쇼핑에 성공했을까.

“너무 재미있어요. 오리 문양 패턴이 가득한 면셔츠, 재미있는 장식이 붙어 있는 그런지룩. 공장에서 대량 생산된 제품에서는 찾을 수 없는 힙이 있죠.”

재미있는 쇼핑이라는 경험을 주는 공간 동묘. 물건을 구매한다는 일차적 목적을 뛰어넘어 삶의 열정과 생동감, 추억과 과거의 매력을 조우하게 하는 마법이 동묘에서 매일 펼쳐지고 있다.

가는 방법

지하철 1호선, 6호선 동묘앞역 3번 출구로 나와 청계천 방향

영업 시간

월~토 10:00~17:00/일요일 11:00~17:00(*매장 별 상이)
주말/공휴일 12:00~18:00 보행자 전용거리로 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