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는 신협 역사상 유일하게 조합-연합회-중앙회로 이어지는 3단계 조직 체계가 운영된 시기였다. 이에 따라 신협은 계통 기구의 역할 분담과 업무 효율화, 사업 영역 확대를 통해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전략을 전개해나갔다. 무엇보다 새롭게 탄생한 지역 연합회는 의욕적으로 지역 밀착화에 주력하며 외형 성장을 위한 신규 조합 설립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1990년대 초 한국 신협운동 역사상 신규 조합 설립이 가장 활발히 이뤄졌다. 신협은 지역 연합회가 직접 지도 교육 활동을 담당하는 기동성과 서민 금융 활성화를 위해 대폭 완화된 신규 조합 인가 건을 적극 활용하며 자산 규모에서 연평균 20%씩 급성장을 이뤘으며, 조합 수 역시 1996년 신협 역사상 가장 많은 회원 조합 수를 기록했다.
이와 함께 15개 지역 연합회에 일제히 연합회관 건립 바람이 분 것은 물론 전국의 많은 단위조합 역시 자체 회관을 건립하기 시작했다. 이는 조합원의 자긍심 고취와 안정적인 기반 조성이라는 긍정적인 의미와 함께 고정자산의 투자에 따른 수지 악화라는 양날의 검으로 되돌아오기도 했다.
한편 신협은 갈수록 다양화되는 이용자 요구를 충족시키고 보다 신속한 업무 처리를 위해 1990년대 내내 업무 전산화를 추진했다. 또한, 다양한 금리자유화 상품을 출시하며 경쟁력을 확보해 나갔으며, 공제사업 역시 상품 다변화로 큰 도약을 이루었다. 환경보전운동과 농산물 유통 구조개선 등의 사업도 시대적 요청에 부합하며 큰 호응을 얻었다.
국제 관계에서는 때마침 문호를 개방한 중국 연변 지역 교포들의 신협운동을 활발히 지원해나갔다. 특히 신협은 교포 신협운동 지원을 전략 사업의 하나로 확대하며 1990년대 내내 좋은 선례를 쌓아갔으나, 1998년 중국 정부가 정책을 바꿔 현지 신협 활동을 불법으로 간주하면서 결국 교류가 끊기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