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 서민들의 오랜 빈곤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신협운동이 태동한다. 메리 가브리엘라 수녀가 주도해 출범한 부산 성가신용조합과 장대익 신부가 주도한 서울의 가톨릭중앙신용조합은 한국 신협운동의 뿌리로, 60년 신협운동의 첫발을 내디뎠다. 두 조합을 필두로 신협운동은 들불처럼 퍼져나가 전국에 많은 신협이 설립되며 서민들의 경제적 지위 향상과 삶의 변화에 기여한다. 특히 1962년 부산에서 결성된 협동조합교도봉사회를 중심으로 지도자 교육이 활성화하면서 신협 창립은 더욱 활발해졌다.
초기 신협운동은 순수하게 민간 주도로 자율적으로 조직되었다는 점, 불특정 대중이 아니라 서로 잘 알고 신뢰할 수 있는 구성원을 중심으로 공동유대를 형성한 점, 조합원으로서 소양을 갖추기 위한 교육을 신협 운영의 기본 철학과 원칙으로 추구했다는 점에서 협동조합의 모범으로 평가받는다.
연합회의 출범과 자립 과정은 초창기 신협 발전의 중대한 분수령이 되었다. 신협운동이 전국적으로 일어나 체계적인 조직 관리와 계획적인 지도사업의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당시 가장 중요했던 지도사업과 조합 관리, 대정부 관계, 국제 관계 등을 총괄하는 계통 기구로서 1964년에 연합회가 출범했다.
출범 초기 재정적으로 전혀 준비가 되지 않아 제 기능을 하지 못했던 연합회는 창립을 실질적으로 주도했던 메리 가브리엘라 수녀와 결별하며 자립할 것을 다짐한다. 자조·자립·협동을 통해 범국민적 운동으로 발전하기 위한 당연한 선택이었다. 이후 자립을 위한 여정은 순탄치 않았지만 회원 조합의 가입금과 회비 납부 활성화, 다양한 기관의 지원과 원조, 무엇보다 신협인들의 헌신적인 노력을 통해 차츰 자립 기반을 다져나갈 수 있었다.
한편 초기에 수혜 일변도였던 국제기구와의 협력 활동은 한국 신협의 발전과 함께 위상을 높이는 계기가 되었다. 한국 신협은 1965년 당시 세계신협 연합기구 역할을 수행하던 미국신협연합회의 국제교도부(CUNA International)에 회원으로 가입한 이후 활발한 국제협력 관계를 이어나갔다. 국제교도부는 1971년 세계신협협의회(WOCCU)로 새롭게 출발했으며, 한국 신협 역시 회원이 되었다. 같은 해 한국 신협은 아시아신협연합회(ACCU)의 창립을 주도하며 아시아 지역 신협운동을 선도하는 큰 성과를 이루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