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는 한국 사회가 큰 격변을 겪은 시대이며, 신협에서도 성장통과 압축 성장, 그리고 새로운 시대를 위한 준비가 이뤄진 시기였다.
1980년대 초반 우리나라는 전국을 들썩이게 만든 초유의 금융사고 여파로 금융실명제와 신용관리기금법이 만들어졌다. 특히 신용관리기금법 제정 과정에서 신협을 직접 통제 대상으로 삼으려는 정부의 움직임을 간파한 신협은 다양한 노력을 통해 이 위기를 벗어났다. 하지만 금융 사고와 부실 경영 사태를 연이어 겪으며 결국 정부의 감독권을 강화시키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이후 신협운동은 자율성 회복을 위한 다각적인 노력으로 이어졌다. 신협은 존폐와 직결된다는 각오로 많은 진통과 시련의 과정을 거쳐 안전기금제도의 시행, 사고 예방을 위한 실태조사, 신용사업 제도 개선, 그리고 인력 증원과 부실 조합 정리, 지도·검사 업무 강화 등의 사업을 펼쳐나갔다.
그 결과 내우외환의 진통 속에서도 신협은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룩해 1983년 조합원 100만 명 돌파에 이어 1986년에는 총자산 1조 원 돌파라는 쾌거를 이뤘다. 아울러 1983년에는 ‘세계신협인대회’를 서울에서 유치하며 한국 신협을 국제적으로 각인시키고 국내에도 신협운동의 참모습을 인식시키는 성과를 거두었다.
1980년대 신협운동에 있어 가장 큰 격변은 단연 제정 이후 16년 만에 이뤄진 신협법 개정이었다. 시대 변화에 맞는 신협법 정비는 모든 신협인의 오랜 숙원으로 이전까지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으나 수차례 무산된 끝에 마침내 1988년 결실을 이룬 것이었다.
처음 개정된 신협법의 가장 큰 특징은 기존의 조합-연합회 체제를 조합-연합회-중앙회 체제로 변경한 것이다. 신협은 1990년대를 앞두고 15개 연합회, 중앙회 창립과 함께 3단계 조직 체계를 출범시키며 큰 변화를 맞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