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고흥의 바닷바람을 맞으며 한 섬을 바라본다. 모험의 목적지는 쑥섬. 두 발을 딛고 있는 나로도연안여객선터미널에 발이 묶여 하염없이 바라보기만 했다. 그래, 모험이 쉬우면 그걸 모험이라고 부를 수 있나. 이 정도는 되어야 어디 가서 모험 ‘썰’ 좀 풀 수 있지 않을까.
전남 고흥의 부속 섬 중 하나인 쑥섬. 쑥이 쑥쑥 자란다고 해서 쑥섬이다. ‘애도’라고도 부르는데, 쑥과 걸맞게 ‘쑥빛 애(艾)’를 쓴다. 쑥섬은 애도 말고도 또 이름이 있다. 고양이섬. 이곳엔 동네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개가 없다. 시골 동네에 기본으로 있는 닭도 없다. 오로지 고양이만 있다. 그래서 우리나라 유일의 고양이섬으로 불린다. 최근에는 쑥섬 외에도 고양이섬이라고 불리는 곳이 있다는데, 그 고양이섬은 사람들이 고양이를 섬에 유기하면서 고양이 개체수가 증가하게 되어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하지만 쑥섬 주민들은 오래전부터 고양이를 영험한 동물로 생각해왔고, 개와 닭 울음소리는 불길하다고 여겼기 때문에 고양이만 섬을 활보하고 있다. 그런 이유로 고양이섬의 원조격이라고 할 만하다.
“비가 와도 배는 뜨는데 바람이 세면 안 떠요. 오늘 기다려도 배는 안 뜰 것 같네요. 일단 예매한 건 취소하시는 게 나을 것 같아요.” 나로도연안여객선터미널 직원의 말이었다. 날씨가 심상치 않다고는 생각했지만 설마 진짜 배가 안 뜰 줄이야. 모험에 어느 정도 행운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그 행운은 내게 오지 않았다. 쑥이든 고양이든 뭐든 보기 위해선 일단 배를 타야 한다. 여객선터미널에서 쑥섬까지는 5분도 안 걸리는 짧은 거리지만 그날따라 유난히 바람이 세 결국 배가 뜨지 않았다. 지척에 두고 발길을 돌릴 수밖에. 바닷가 날씨는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 바로 이런 건가보다.
며칠 뒤, 다시 심기일전하고 나로도연안여객선터미널에 도착했다. 하늘도 맑고 바람도 세지 않다. 파도도 잔잔하다. 최적의 날씨다. 쑥섬을 오가는 배는 최대 12명을 태울 수 있을 정도로 그렇게 크지 않다. 이 작은 배가 쑥섬 주민들을 육지로 오갈 수 있게 하는 건 물론, 관광객들의 발이 되어준다. 배가 출발하니 그동안 잠들어 있던 모험가 DNA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마치 대항해 시대의 모험가가 된 기분이랄까. 잠시 가슴 뛰는 상상을 하는 사이 배가 쑥섬에 도착했다.
제일 먼저 반겨주는 건 고양이 조형물이다. 고양이의 환영 인사를 받은 후, 곧장 쑥섬 탐험에 나섰다. 오리 모양의 건물을 왼편에 끼고 돌면 계단길이 나오는데, 쑥섬 트레킹의 시작점이다. 작은 섬이라 가볍게 오르면 되겠지라고 생각한다면 그 마음은 접어야 한다. 평소에 걷기 운동마저도 안 했던 사람에게는 조금 가파르게 느껴지고 숨도 제법 가빠진다.
계단길을 올라가면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난대원시림으로 들어간다. 나무가 빽빽하게 자리하고 있어 조금 전의 바다는 보이지 않는다. 난대원시림은 쑥섬 주민들이 신성시 하던 곳으로, 쑥섬을 찾아오는 사람들을 위해 그리고 마을의 발전을 위해 400년 만에 개방했다고 한다. 400년이라는 시간을 고작 몇십 년 살아온 인간이 정확하게 가늠할 수 없지만 크고, 굵고, 높다랗게 자란 나무들을 보면서 세월의 흐름을 짐작할 수 있었다.
숲길을 걷다가 고개를 들었다. 나무와 나무 사이, 잎과 잎 사이로 하늘이 보였다. 이 풍경 또한 숲이 주는 매력이자 숲이 주는 즐거움이다. 난대원시림은 보물찾기 하는 재미가 있다. 나무가 자유롭게 자라면서 ‘나무에 매달린 코알라’ 등 어떠한 형태를 상상하게끔 하는데, 행여 사람들이 이 재미를 놓칠까봐 안내표지판으로도 설명하고 있다. 사람들이 조금 더 천천히 숲을 내밀하게 즐길 수 있도록 꾸민 주민들의 노력이 엿보인다.
탐방로를 걷다 보니 별정원에 도착했다. 숲에서 나와 마주한 정원은 드넓게 펼쳐진 바다 풍경과 어우러져 있다. 덕분에 시야도 탁 트인다. 이곳은 이름처럼 ‘정원’이라 변화하는 계절에 맞춰 꽃을 가꾸고 있다. 특히 봄과 여름 사이에 수국이 만들어내는 화려한 풍경이 그렇게 대단하다고 한다. 지금은 그 풍경을 볼 수 없지만 가을은 고즈넉하면서도 아련한 아름다움을 그려냈다. 사랑스러운 분홍빛 물결을 만드는 핑크뮬리, 바닷바람과 춤을 추는 억새, 한들한들 코스모스 그리고 이름 모를 알록달록한 꽃들. 저마다의 계절색을 드러냄에 있어 어찌 우열을 가릴 수 있을까 싶다. 모험의 여정에서 쉴 새 없이 걸었기에 열심히 움직여준 발과 다리를 위해 이곳에서 잠시 쉬었다.
난대원시림과 정원을 뒤로하고 내려와 마을을 모험하기로 했다. 마을에 들어서면 돌담이 나오는데, 사랑하는 사람과 걸으면 혼자서만 간직하고 있던 사랑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이 작은 마을에 이야깃거리가 참 풍부하구나’하고 생각하며 걷던 중 고양이를 만났다. 쑥섬에서 고양이를 보지 못하고 돌아온 경우도 꽤 있다고 하여 기대하지 않았던 터라 더 반가웠다. 고양이를 만난 것만으로도 행운인데 사람을 잘 따르는, 소위 말하는 ‘개냥이’였다. 이 작은 생명체가 어찌나 애교를 부리는지 그대로 홀릴뻔했다. 졸졸 따라오는 고양이와 함께 마을을 둘러보았다.
쑥섬 전체를 모험하는 건 1시간 반이면 충분하다. 이 시간도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걸어서다. 그만큼 작은 섬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누군가는 시시하다며 냉소적으로 이야기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모험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무엇을 발견하고 어떻게 느낄지는 마음가짐에 따라 달라지니까. 전국에 있는 모험가들에게 고한다. 이곳에서 당신만의 모험기를 써 내려가 보라고. 그 길에서 고양이가 당신의 동료가 되어줄 것이니 아쉬움 없을 모험이라고.
쑥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