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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1+12호

혼자일
용기
에세이
글 이수현 (소설가, 도서 «기록하는 태도»,
«유리 젠가» 저자)

끝없는 고요 앞에서 난 잠시 눈을 감는다. 이내 철썩이는 파도 소리와 생경한 외국어가 귓가에 들린다. 끝없이 솟은 야자수와 넓게 펼쳐진 화이트 비치가 마치 한 폭의 예술작품과 같다. 테이블 위에 둔 연유 커피, 일명 ‘쓰어다’를 한 입 쭉 빨아 마신다. 세포 하나하나를 깨우는 단맛과 시원함에 몸이 부르르 떨린다. 여유로운 표정으로 모래사장을 걷는 행인들이 눈에 들어온다. 한 치의 분주함 없이 현재에 완벽히 녹아든 그들을 보며, 여유를 배운다. 그제야 내가 타지에 홀로 와 있다는 사실을 실감한다. 가히 감정을 과장하거나, 상대의 기분에 맞춰 내 기분을 변화할 필요가 전혀 없다.

어느 순간부터 내 안의 넉넉함이 사라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회사 생활과 창작 생활을 병행하며 시간을 쪼개 사는 일상이 당연하게만 느껴졌다. 인파가 가득 찬 출근길, 앞 사람이 개찰구 앞에서 허둥대기라도 하는 경우엔 인내하기보단 힐끔대며 눈치를 주기에 바빴다. 더욱이 친구들과의 약속은 즐거운 쉼이 아닌, 빨리 처리해야 할 일처럼 느껴졌다. 회사에서 내 소관이 아닌 일을 부탁받을 땐 방어적인 태도로 일관했고, 위험이 큰 프로젝트는 꼭 책임을 나눠 가지길 원했다. 어느 날, 그런 나를 본 상사 제이가 나 홀로 여행을 제안했다.

“혼자? 혼자 여행을 무슨 재미로 가요.”

그때까지만 해도 난 혼자 하는 일이 무서웠다. 남들이 ‘혼자인’ 나를 보는 시선을 두려워했던 것도 같다. 제이는 짐짓 흥미로운 표정으로 말했다.

“누가 알아. 혼자일 때 더 많이 보일지.”

마침 내겐 여름휴가가 남아 있었고, 친구들과 계획해둔 다낭 여행만을 손꼽아 기다리던 중이었다. 그런데 여행을 가기로 한 친구들이 모두 피치못할 사정이 생겨 함께 갈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여행 표를 취소하려던 차 상사 제이의 말이 생각났다. 서른이 될 때까지 해외뿐 아니라 심지어 국내 여행지조차 혼자 가본 일이 없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이번만큼은 도전해 보고 싶다는 욕망이 꿈틀거렸다.

늘 꼼꼼하게 일정을 챙기던 친구가 없으니 당황스러움의 연속이었다. 공항에서 짐 찾는 곳을 몰라 허둥대거나, 하차 장소를 착각해 한참을 헤매야만 했다. 맛집에 가서도 혼자 뻘쭘하게 앉아 먹는 일이 따분하게만 느껴졌다. 사진을 찍어줄 사람이 없으니 SNS에 다낭 풍경에 녹아든 내 사진을 올리기도 어려웠다. 더운 여름, 등 뒤로 땀이 줄줄 흐르고, 집으로 돌아가고만 싶었다.

그러던 와중, 우연히 카페 한 곳에 들어갔다. 농인이 운영하는 소담한 카페였는데 삐걱거리는 목재 계단 위 아기자기한 수공예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테이블 위에 ‘THANK YOU’, ‘ICE’, ‘HOT WATER’ 등의 나무 블록을 올려 손님이 의사를 전달할 수 있었다. 창밖을 향한 흔들의자에 앉아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요새 나는 어떤 것이 그토록 힘들었나. 오 년 뒤, 십 년 후 모습은 어떠할까. 나는 어떤 일을 할 때 가장 행복한가.’ 따사로운 베트남의 햇살을 내리쬐며, 나에 대한 수많은 질문을 던졌다. 방해하는 소음도, 주시하는 시선도 전혀 없는 완벽한 혼자만의 시간이었다. 일행과 함께하는 번잡스러운 대화가 아니었다. 스스로에 대한 깊숙한 물음의 답이 수면 위 답이 새겨진 나무 블록처럼 잔잔히 떠올랐다. 무심하게 넘겨왔던, 소화되지 못했던 마음을 챙길 수 있는 새로운 시간이었다. 그 이후 세세한 풍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붐비지 않는 로컬 맛집에서 마주한 다낭의 참맛, 익살스러운 거리의 풍경과 다채로운 기념품 가게. SNS에 올려 여행 사진을 자랑하지 않더라도, 마음으로 새겨진 순간의 기쁨들. 어쩌면 혼자만의 여행이 앞으로 걸어갈 삶과 아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로지 내 선택으로만 이루어지는 일련의 단계와 책임,
몰랐던 나를 발견하고, 새로이 발견할 성취까지.
안전지대를 벗어나 홀로 모험한 순간, 난 그 어느 때보다 자유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