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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9+10호

책을 읽으며 산책하는 이수현 작가
문학책을 읽는 시간
내 영혼을 위한 맛있는 한 끼의 식사
CU가 만난 사람
작가. 이수현
문학책을 읽는 시간

내 영혼을 위한
맛있는 한 끼의 식사

이수현 작가

요즘 우리 세상살이를 한 문장으로 정리하자면 이렇게도 할 수 있겠다. ‘정신차려 이 각박한 세상에!’ 알면서도 홀랑 당하기 쉬운 세상이라 하나라도 더 배워야 하고, 뭐 하나 보장할 수 없는 미래에 실용서를 펼쳐들 수밖에. 그럼에도 우리가 문학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신협 〈HAPPY STORY〉의 ‘에세이’ 칼럼에 따뜻한 글을 전하고 있는 이수현 작가를 만나 답을 함께 찾아보기로 했다.

책을 읽는 이수현 작가
 
유리젠가와 기록하는 태도 책 사진
우리가 인간다움을 잃지 않도록

시 분야로 등단한 지인과 대화하던 중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글만 써서 먹고 사는 삶? 작가들 중에서 일부야. 좋은 작품을 써야 하는 것도 있지만 사람들이 책을 참 안 읽어.” 그래서 작가들이 작품활동 외에 밥벌이에 나서야 한단다. 우리는 왜 문학책을 읽어야 할까? 소설과 에세이를 쓰고 있는 이수현 작가에게 묻기 조심스러운 질문이었지만 한편으로는 밥벌이 라이프가 최우선인 직장인의 궁금증이기도 했다.

“돈을 버는 법, 자본주의의 돈의 속성과 같은 책들만 읽는다면 인간이 인간다움을 잃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가 사는 사회를 담은 문학책을 읽어야 좀 더 자유롭고 유연한 사고를 할 수 있다고 보거든요. 그래서 저는 문학이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하고, 이를 읽는 독자층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이수현 작가의 대답에 알베르 까뮈의 소설 〈페스트〉 속 한 대목이 떠올랐다. 페스트로 폐쇄된 도시에서 의사로 최선을 다하는 주인공 리외는 “영웅이 되고 싶은 거냐”라는 기자의 질문에 “그것은 단지 성실성의 문제입니다. 아마 비웃음을 자아낼 만한 생각일지도 모르겠으나 페스트와 싸우는 유일한 방법은 성실성입니다. 내 경우로 말하자면 그것은 자기가 맡은 직분을 완수하는 것이라고 알고 있습니다”라고 답했다. 이 장면을 읽고 성실하게 사는 것, 나는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가에 대해 생각하는 기회가 되었는데, 이런 게 바로 인간다움을 잃지 않게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닐까.

활자에는 보이지 않는 힘이 있다

오직 문학책만이 다양한 인간군상과 세상사를 담고 있지는 않다. 영화, 드라마 또한 깊은 깨달음을 주고, 이야기에 울고 웃는다. 더군다나 영상의 시대, OTT의 홍수로 영상 매체의 위력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시대가 달라지면서 파급력을 갖는 매체도 달라지는 법이라 하지만 그 속에서도 책이 갖는 변하지 않는 역할은 분명 있다. 이수현 작가는 ‘활자의 힘’을 예로 들었다.

“상황이 주어졌을 때 바로 보여지는 대로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인물은 어떤 모습일지, 배경 풍경은 어떨지 상상하잖아요. 상상에는 정답이 없으니까 내가 더 크고 넓게 사유할 수 있어요. 그게 바로 활자의 힘, 활자의 매력이에요. 어떻게 보면 인간이 더 똑똑해지기 위해, 퇴화되지 않기 위한 도구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이수현 작가는 ‘다양한 메시지 전달’에 대해서도 덧붙였다.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의 경우 시간상 대부분 하나의 주제의식에 집중하지만 소설은 하나의 세계관에서 다양한 문제의식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이다. 소설이 영화화, 드라마화 되었을 때 재미있게 보았으면서도 아쉬움이 남았던 건 이런 이유 때문이었으리라.

책을 읽으며 산책하는 이수현 작가
한 번 읽고 끝낼 수 있는 문학책은 없다

문학책은 한 번 읽고 나면 결말을 다 알게 된다. 필요하면 다시 한 번 더 펼치게 되는 실용서와 비교했을 때 큰 차이점이다. 그래서 또 읽기 어렵고 굳이 구입해서 읽고 싶지 않다는 의견도 있다. 이미 결말을 알고 있는 책, 다시 즐겁게 볼 수 있는 방법은 정말 없는 것일까. 방법이 없을리가. 한 방법은 필사다. 손으로 써내려 가는 필사 과정에서 문장에 좀 더 집중하고 깊은 탐닉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 장소를 바꿔서 책을 읽어보는 것도 하나의 재미가 될 수 있다고 이수현 작가는 말했다.

“조해진 작가님의 〈로기완을 만나다〉를 집중해서 읽고 싶어서 처음에는 독서실에서 읽었어요. 그리고 여행을 갔을 때 이 책을 챙겨 갔는데요. 탈북자인 로기완이 살기 위해 알지도 못하는 벨기에에서 겪었던 외로움이나 이방인으로서의 아픔이 철썩이는 파도와 낯선 풍경에 묻혀서 더 잘 와닿았던 경험이 있어요. 그야말로 글맛이 달라진 거죠.”

한 권의 책에 작가는 수많은 감정을 담아낸다. 그 감정을 한 번 읽고 모두 알았다고 생각한다면 어쩌면 이건 오만함 아닐까. 살아가면서 경험이 쌓이고, 그 경험은 타인에 대한 이해심의 깊이와 폭을 달라지게 하니까 말이다. 세상에 한 번 읽고 끝낼 수 있는 문학책은 없다.

앉아서 책을 읽는 이수현 작가

“ 꾸준히 창작 활동을 하는 사람으로서 큰 보람을 느끼고 있어요.
우리 사회를 아름답게 만들어 나가는 일에 일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래서 저는 문학을 사랑해요.”

소설가는 예술가이기 이전에 자유인이어야 한다.

우리 사회를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문학책. 우리는 복잡한 감정과 사유의 능력을 가진 인간이기에 문학책은 영혼을 위한 한 끼의 식사다. 책장을 둘러보았다. 참 다양한 메뉴가 꽂혀 있다. 마음에 드는 책 한 권을 꺼내 들고 소파에 앉았다. 내 영혼을 위한 즐거운 식사 시간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