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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9+10호

책자와 화분 배경
모두가 이방인
소설〈파친코〉를 통한 위안
에세이
글 이수현 (소설가, 도서 «기록하는 태도»,
«유리 젠가» 저자)

전화선을 붙잡은 어머니의 손끝이 떨렸다. 어렴풋이 기억나는 그날의 분위기는 잿빛이었다. 살을 에는 겨울철, 옷깃을 단단히 여미고 어머니와 함께 어디론가 향했다. 그렇게 우린 고모할머니의 마지막에 함께할 수 있었다. 1950년 무렵, 일본 오사카에 돈을 벌러 떠난 고모할머니는 타지에서 내내 고생만 하다 삶을 마감했다. 얼굴을 아는 가족들과 처음 보는 이들이 한데 모여 있었으나 그들은 하나같이 구슬피 울고 있었다. 한때 무국적자로 분류된 고모할머니는 자녀와 손주까지 보는 동안 한 번도 고국 땅을 밟지 못했다고 했다. 당시 어린 내가 모두 소화하기엔 어려운 슬픔이었으나, 사람들의 그늘진 얼굴에 나도 공연히 울어야 할 것만 같았다.

후에 이민진 작가의 《파친코》를 읽는 내내 손에서 책을 놓을 수 없었다. 이내 나와 가까운 사람 역시 소설의 주인공 중 한 명이었음을 깨달았다.

“역사가 우리를 망쳐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라는 묵직한 문장으로 책은 시작된다. 일제강점기부터 1980년대까지를 아우르는, 4대에 걸친 재일교포의 삶을 다룬 이 작품은 발간 직후 큰 화제가 되었다. 미 전 대통령 오바마의 극찬은 물론, 뉴욕 타임즈를 비롯한 세계 유명 매체 추천 도서에 여러 차례 선정되었다.

두 권의 방대한 분량의 책을 읽으며 고모할머니의 삶이 겹쳐 보였다. 한국인으로서의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을 선자와 그 후손의 이야기가 핍진하게 그려졌기 때문이다. 선자는 시대의 어려움에 굴복하지 않고 끌려간 남편을 대신해 억척스럽게 삶을 일구어나간다. 김치와 젓갈 냄새, 숙소에서 나는 말과 짚의 냄새 등 정체성을 규명하는 특유의 향기가 글을 읽는 내내 생생해졌다.

그렇다면 작품의 제목이기도 한 파친코는 그들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일본인이 천대하는 도박 장사인 파친코는 재일 한국인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자리였을 것이다. 이 일을 통해 그들은 사랑하는 이들을 지키고, 후손을 번성하고, 재산을 불려 나갈 수 있었다. 내가 나일 수 있게 하는 일이자, 삶을 존속할 수 있게 하는 노동을 통해 그들은 정체성을 지켜나갈 수 있었다. 고모할머니의 딸, 유라 이모는 일본 유수의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친다고 했다. 그녀는 어린 내가 보기에도 영민하고 당차 보였다. 이모는 엄마를 포함한 외가 식구들에게 어색한 억양으로나마 감사함을 표했다. 그리곤 이제 고향에 왔으니 엄마도 마음 푹 놓으라고, 영정사진을 몇 번이나 쓰다듬었다.

책을 통해 어릴 적 마주했던 고모할머니의 아픔과 상처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무지해 관심을 두지 않았던 ‘자이니치’의 삶에도 관심이 생겼다. 휘몰아치는 역사의 격변 속에서 조국 방문도 거부당한 채, 내내 고향과 가족을 그리워했을 그녀의 마음을 조금씩 헤아려본다. 어머니는 세월이 많이 지난 지금도 가끔 그녀의 사진을 본다. 그리곤 유라 이모에게 전화를 건다. 문틈 사이로 들려오는 어조엔 굳건한 힘이 실려있는 것 같다. 마치 네 뿌리는 여기에 있다고. 그것을 잊지 말고 꿋꿋하게 지내라고.

이민진의 소설 《파친코》에 세상 사람들이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쩌면 우리는 누구나 이방인이며, 경계에 서 있기 때문일 테다. 현대 사회에서는 인종, 계급, 부 등 더 첨예하고 다양한 기준으로 상대와 나를 가른다.

저자는 끊임없이 속삭인다.
수많은 변화와 끝없는 구분 속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을 잃지 않는 것이라고. 문장은 쉴 새 없이 요동치는 현대를 살아가는 내게
큰 위안이 되어준다. 조국의 자긍심을, 끈기와 인내를,
가정의 따스함을 되새길 수 있게 한다. 내 삶에 뭉근한 울림을 가져다준 책을
예쁘게 포장해, 어머니의 서재 위에 올려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