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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7+8호

나무 배경
일상을
여행자처럼 사는 방법
사유의 시간
글. 편집실
산책하는 여자
나가는 순간부터 여행이다

꽉 막혀 있는 일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꽉 막힌 나의 생각이 만든 세상이었다.
세상은 멈추지 않고 많은 이야기를 만들고, 시시각각으로 다양한 풍경을 그리고 있었다. 멈춰 있었던 건 나였다.
집 밖으로 나가는 순간부터 여행이라고 했던가. 오늘은 일상을 여행자처럼 살아보기로 했다.

하늘과 나무

11:00AM

아무 버스에 올라타 떠나기

집과 일터 사이. 육상 트랙 위를 벗어나면 안 되는 육상선수처럼 늘 같은 노선에 몸을 실었다. 하지만 동네에는 다양한 노선이 곳곳으로 사람들을 데려다주고 있었다. 오늘만큼은 목적지 없이 마음에 끌리는 버스에 올랐다. 그래도 아직은 사는 동네라 별거 있겠나 싶었지만 ‘여기에 이런 식당이 있었구나’, ‘TV에 나온 가게가 바로 여기였구나’하며 새로운 발견이 시작되었다. 좀 더 벗어나니 전혀 다른 동네다. 역시 세상은 가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다. 누군가가 자신이 가본 길을 이야기해 주어도 결국 그 사람의 시선일 뿐이다. 여행 유튜버 곽튜브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가둬 놓으면 그곳이 세상인 줄 알아요.”

전철
도시

12:00PM

사람 구경하기

마음에 드는 정류장에 내려 동네를 걸어본다. 무작정 버스를 타고 내렸기에 동네 이름조차 알 수 없다. 알려고 한다면 핸드폰을 꺼내 지도 앱을 켜면 되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마음 가는 대로 걸어보는 거다. 발이 끄는 대로 걷다 동네 슈퍼에서 음료수 하나를 사고 근처 공원에 앉아 사람을 구경한다. 운동하는 사람, 갈 길이 바쁜지 빠른 걸음으로 공원을 가로지르는 사람, 묵직해 보이는 시장바구니를 어깨에 메고 가는 사람, 강아지와 산책하는 사람. 언제 이렇게 사람들을 유심히 봤나 싶다. 마치 목표가 지하철역인 사람처럼 출퇴근 지하철역으로 가고, 자리에 앉으면 모자란 잠을 자기 바쁘다. 잠을 자지 않으면 늘 핸드폰에 시선 고정. 드디어 사람이 눈에 들어온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그들의 이야기를 상상해 본다. 여유를 가진 사람만의 특권과도 같은 시간이다.

자전거 타고 산책
커피

13:30PM

안 먹어본 음식 먹기

출근 후 점심시간이 되면 늘 가던 식당, 늘 먹던 음식을 먹게 돼 곤 한다. 정해진 시간 안에 해결해야 한다는 제약이 있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하지만 그 ‘어쩔 수 없다’라는 핑계로 나의 입맛을 가둬버린 건 아닐까. 오늘은 여행자이니 낯선 음식의 식당으로 들어가 처음 보는 음식을 주문해 본다. 평소 접하지 못한 향과 맛이 코끝과 혀끝을 자극한다. 왜 지금까지 이런 맛을 모르고 살았을까. 무풍지대와 같던 일상에 바람이 불었다. 늘 새로운 식당을 찾아가기 어렵다면 가던 식당이라도 안 먹어본 음식을 먹어보기로 다짐한다. 새로운 맛은 창의성을 위한 자극으로도 도움 된다고 하니 말이다. 니체는 “깨진 틈이 있어야 그 사이로 빛이 들어온다”라고 말했다. 새로운 맛 도전이 틈을 만들었다. 내 밥상에 맛있는 빛이 들어왔다.

그라탕

16:30PM

나를 위한 기념품 선물 사기

결국 기록이 기억을 지배한다고, 어느 날 문뜩 그날의 추억을 떠올릴 수 있는 작은 실마리가 필요하다. 그래서 여행지에선 평소라면 절대 지갑을 열지 않을 것 같은 물건도 쉽게 주머니로 들어간다. 돌아와서는 ‘왜 샀지?’ 싶을 때도 있지만 그 덕에 그 여행을 다시 떠올릴 수 있고, 이게 여행의 즐거움이기도 하다. 일상 여행에서도 마찬가지 아닐까. 평범한 일상 여행을 조금 특별하게 남기기 위해 나를 위한 작은 기념품을 선물해 본다. 이 가게 구경하고, 저 가게 구경하다 오늘을 기념할 아기자기한 소품 하나를 샀다. 평소에는 사지 않을 법한 물건이지만 이 작은 기념품이 어느 바쁜 하루 틈바구니에서 기억을 끄집어내어 짧은 휴식을 줄 테다.

네잎클로버

“깨진 틈이 있어야 빛이 들어온다.”
- 니체 -

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