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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5+6호

꽃을 든 손
콩 고르는
마음
에세이
글 이수현 (소설가, 도서 «기록하는 태도»,
«유리 젠가» 저자)

발뒤축에 이물감이 느껴졌다. 신을 벗어 거꾸로 흔드니 검은콩 하나가 통통 튀면서 거실로 굴러갔다.

‘아니 이게 왜 여기에’라는 생각도 잠시, 부산스럽게 콩을 고르고 있는 할머니의 모습이 보였다.

“할머니가 편찮으셔. 당분간 서울서 우리와 지낼 거야.”

엄마의 일방적인 통보가 이해가 가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치매를 앓는 할머니를 시골 넓은 집에 홀로 두는 것도 무리였으니 말이다. 할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신 뒤 가끔 뭔가를 잊어버리시던 할머니의 증상은 더욱 심해졌다. 서울 병원에 모시고 다니기 위해서는 일곱 자매 중 유일하게 서울에 사는 우리 집이 될 수밖에 없었다.

젊어서부터 부지런히 농사를 지어오신 할머니는 그때의 생활 습관이 몸에 배었는지 잠시도 가만히 계시지 못하셨다.

“소 밥은 줬었나. 아이고 참말로. 고추 널어놓은 거 거둬야 하는디.”

손에 쥘 일을 찾아 불안해하는 할머니는 자주 베란다를 내다보며 한숨을 쉬셨다. 어쩔 수 없이 엄마는 메주콩과 검정콩 한 됫박씩을 섞어 할머니께 콩 고르기 연습을 시켰다. 치매를 늦추는데 좋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할머니는 드디어 당신에게도 일감이 생긴 게 좋으신지 신명 나게 콩을 고르셨다. 할머니가 다 고르면 또 엄마가 섞고, 그러면 할머니는 또 신나게 콩을 골랐다.

하지만 그 모습을 바라보는 내 마음은 편치 않았다. 비좁은 아파트에 다섯 식구가 모여 사려니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못 뵙고 지낸 지 오래라 우리와 함께 살게 된 할머니가 어색하게만 느껴졌다. 더욱이 대가족 사이에서 오순도순 자라난 엄마와는 달리, 서울서 나고 자란 나는 내 구역을 침범하거나 시간을 방해받는 게 극도로 싫었다. 야근을 끝낸 뒤 집에 돌아와 단잠을 자고 있을 때면 아침마다 방 틈을 넘어 들려오는 콩 고르는 소리가 커다란 파도 소리 같았다. 쏴아아. 쏴아아. 나는 자주 뒤척였다.

게다가 고된 농사로 관절이 닳아 할머니는 구부정하게 걸으실 수밖에 없었다. 온몸의 체중을 실어 뒤축으로 걷는 할머니의 발망치 소리가 거슬렸다. 승진을 앞둔 시기, 내 신경은 온통 곤두서 있었다.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았지만, 엄마도 그런 나의 마음을 어느새 눈치채신 것 같았다. 어느 날 저녁, 엄마는 사진 한 장을 갖고 오셨다.

할머니가 어린 손녀를 업고 환한 웃음을 보이는 사진이 보였다. 이게 누구냐 물으니 엄마는 나라고 했다. 출산 직후, 아빠의 사업이 어려워지자 엄마는 서울서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할머니께 갓난아이인 나를 잠시 맡겼다고 했다. 그 덕분에 어려운 시기를 넘겨 지금까지 서울에 기반을 잡고 살아올 수 있었노라 말씀하셨다. 모든 걸 다 포기하고 시골로 돌아가려고 했음에도 할머니는 나는 괜찮으니 느그들 바쁜 거 다 해결하고 와도 괜찮다고, 건강부터 챙기라는 말도 덧붙이셨더랬다. 앙앙거리는 손녀를 사랑으로 보듬어주신 게 바로 네 외할머니라고도 말씀하셨다. 전혀 기억나지 않는 과거의 흔적을 마주하고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할머니는 기억을 헤매는 와중에도 나를 보고는 늘 한 마디씩 덧붙이셨다.

“하이고. 이삐다. 언제 저렇게 컸을꼬.”

누구에게나 하는 말인 줄로만 알았는데 번진 기억 속에서도 손녀의 모습만은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던 것이다. 할머니가 고르고 고른 기억이 나였다는 사실이 죄스럽고, 감사했다. 고이 잠든 할머니 위로 통에 담겨있는 몇 알의 검은콩이 눈에 들어왔다. 할머니가 미처 골라내지 못한 것이 분명했다.

탁. 탁. 검은콩과 함께 검은 마음을 솎아냈다.
어린 것들을 먹이고, 입히고, 재우기 위해 밤낮없이 일했을 할머니의 손은
여전히 퉁퉁 부어있었다. 울퉁불퉁한 그녀의 손 위로 내 손을 살포시 얹었다.
삐죽삐죽 솟아있던 마음 그릇이 이제야 고르게 평평해졌고,
온 마음으로 할머니를 담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