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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1+12호

뉴질랜드 바다 배경
인류가 모험을 떠나지 않았다면?
그 위대한 발견은 없었다
사유의 시간
글. 편집실

인류는 자신이 머물고 있는 자리가 세상의 전부라
생각하지 않고 더 큰 세상을 보기 위해 모험을 떠났다.
그리고 그 모험의 여정에는 수많은 발견이 따라왔다.
그렇게 발견된 하나하나가 모여 오늘의 모습을 만들었다.
그 위대한 발견의 순간을 알아본다.

금성횡단은 연막작전!
뉴질랜드와 호주를 발견하다

1768년, 영국의 해군 대위 제임스 쿡은 남태평양의 타히티섬에서 금성이 태양 앞을 가로지르는 순간인 ‘금성횡단’을 측정하는 임무를 안고 항해에 나섰다. 하지만 이는 표면적인 임무였고 비밀 지령이 따로 있었다. 위도 40도까지 항해하여 전설 속 남쪽의 대륙을 발견하는 것. 당시 영국은 미지의 남쪽 대륙에는 천연자원이 넘치고, 이 대륙을 정복한다면 태평양의 교역과 군사력을 지배할 수 있다고 믿었다.

1769년 10월 6일 오후 2시, 제임스 쿡은 목적이었던 남쪽 대륙을 발견했다. 동쪽 해안을 꼼꼼히 조사하기 시작했고, 북쪽을 항해하면서 지도도 그렸다. 제임스 쿡은 탐험 중 이상함을 감지했는데, 결국 그곳은 대륙이 아니라 섬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 섬은 바로 뉴질랜드 북섬이다. 바라던 결과는 아니었지만 제임스 쿡은 뉴질랜드 북섬과 남섬을 발견한 인물로 역사에 기록되었다. 참고로 뉴질랜드 북섬과 남섬 사이에는 해협이 가로지르고 있는데, 쿡 해협이라고 부른다. 유추할 수 있듯이 제임스 쿡 이름에서 가져온 명칭이다.

제임스 쿡은 여기서 항해를 멈추지 않고 이어 나가 1770년 4월 19일 호주의 남동부 해안에 도착, 그렇게 그는 호주 동부를 탐험한 최초의 유럽인이 되었다. 제임스 쿡의 모험은 계속되었다. 1772년 2차 항해를 떠나 처음으로 남극권 진입에 성공했고, 1776년 3차 항해에서는 샌드위치 제도(현 하와이)를 발견하기도 했다. 제임스 쿡의 모험은 세계의 역사가 새로 쓰여지는 데 큰 역할을 했으며, 그가 모험을 하지 않았다면 세계 지도가 만들어지는 시기는 훨씬 늦어졌을 지도 모른다. 더불어 해양 탐사의 기초를 마련했다는 점에서도 큰 의의가 있는 모험이다.

뉴질랜드 바다
사실 목표는 빌카밤바였지만!
잉카 문명 마추픽추를 발견하다

잉카제국의 유적에 대한 관심이 많았던 미국 예일대학교의 교수 하이럼 빙엄은 1911년 잉카제국의 마지막 수도이자 항전지인 빌카밤바를 조사하기 위해 페루 원정팀을 꾸리고 출발했다. 16세기의 기록에 따르면 빌카밤바가 ‘샘물이 솟아 나오는 거대한 백색암석 위에 있다’고 하여 빙엄 일행은 우르밤바 계곡을 중심으로 찾아 나섰지만 여정은 쉽지 않았다. 길을 잃는 건 다반사였고, 해발 약 2,000미터를 넘나드는 산악지형을 헤매고 다니는 터라 피로는 쌓여만 갔다. 이에 더해 기후는 너무나도 변화무쌍했다.

우르밤바 계곡을 조사하던 빙엄 일행은 한 원주민 가족을 만나게 되는데, 그 가족의 아이가 길 안내에 나섰다. 반신반의하며 산길을 걷다 거대한 산봉우리 앞에 있는 숨은 도시를 발견했다. 하지만 빙엄에게 환희의 순간은 짧았다. 조사 중 이 유적지는 기록 속의 빌카밤바와 흡사한 부분이 없다는 걸 알게 되었고, 목표였던 빌카밤바가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비록 원하던 것을 찾진 못했지만 그의 발견은 또 다른 방향에서 세계를 놀라게 했다. 바로 이 유적지는 잉카의 전설 마추픽추였다.

빙엄의 마추픽추 ‘최초 발견’에 대해서는 많은 의견이 있다. 그가 최초가 아닐 수 있다는 것. 이견이 있더라도 빙엄의 발견 이후, 마추픽추는 세계적인 고고학적 중요성을 가진 유적으로 인정받게 되었으며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많은 이들의 호기심과 관심을 끌며 잉카 문명의 위대함을 세상에 알리고 있다.

마추픽추
기발한 엔지니어의 정글 모험!
고무나무를 발견하다

고무는 다양한 제품으로 우리 생활 깊숙이 들어왔지만 고무나무를 발견한 사람이 프랑스의 기발한 엔지니어 프랑수아 프레노 드 라 가토디에르라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1700년대 중반, 가토디에르는 우연히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를 들었다. 아마존 밀림의 원주민들은 나무의 유액(송진)으로 온갖 신기한 물건을 만든다는 것. 이는 가토디에르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고 유액이 흐르는 나무를 찾아 아마존 밀림으로 들어갔다. 행운의 여신은 가토디에르의 편이었나보다. 한없이 헤매던 중 카누를 타고 있던 누라그족을 만나 유액이 흐르는 나무의 잎과 열매의 모양에 대해 정보를 얻었다. 그는 바로 카누를 마련해서 나무 추적에 필요한 생필품을 실어 나섰고, 남미 가이아나의 아프루아그강에 이르렀을 때 드디어 보물, 즉 고무나무를 찾았다.

가토디에르는 고무에 대해 연구하면서 논문을 쓰기도 했다. 그는 논문에서 나무에 관해 기술하고 고무를 추출하는 방법을 설명했다. 고무의 활용에 관해서는 펌프 도관, 잠수복, 물통, 과자 주머니 등을 제안했다. 가토디에르의 연구가 발표되자 많은 사람이 탄성 좋은 훌륭한 소재인 고무에 관심을 두기 시작하고 많은 과학자가 고무를 이용해 지우개, 멜빵, 스타킹 고정 밴드 등 다양한 제품을 만들었다.

고목나무